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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간론파/추방선거

추방선거 - 프롤로그 5부

추방선거 한글 번역


프롤로그 5부



이치죠 카나메

『역시, 뭔가 이상해』


헤드폰을 벗자, 이치카가 이쪽을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치죠 카나메

『기억이, 토막나 있어』



호시 이치카

『......카나메도 그래?』


이치죠 카나메

『라는 건, 이치카도?』



호시 이치카

『학교가 끝나고, 교실을 나설때부터.....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기억이 없어』


이치죠 카나메

『.......방에 돌아온 이후는?』



호시 이치카

『평소처럼 목욕을 하고, 숙제를 한 뒤-』


이치죠 카나메

『방에 돌아온 이후의 기억은, 전부 이어져 있어?』



호시 이치카

『이어.... 졌냐니?』


이치죠 카나메

『그때부터 기억이 토막나있진 않아?』



호시 이치카

『그렇진 않아. 점심 식사도 제대로 준비했고, 그걸 먹을때도, 먹고 나서 책을 읽을 때도, 멀쩡히 기억나거든』


이치죠 카나메

『그런가. 내 경우는, 더 심해. 식사를 한 기억도 없어.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가, 나온 순간까지 끊겨있고...... 어느 순간 방문을 닫았고.... 불을 끄고.... 잠들었어』



호시 이치카

『기억이.... 지워졌구나』


이치죠 카나메

『......그런 것 같아』


하지만, 어떤 기억이 지워진 걸까?

-그 답은 모른다.



호시 이치카

『일주일 정도의 기억을 되짚어 봤는데도, 대체로 비슷해. 교실에서 수업을 받은 기억은 있지만, 아침의 일도, 점심시간의 일도 생각나지 않아. 카나메의 집에서 우리 집까지 돌아갈 때의 기억밖에 없어. 평소엔, 자세한 것까진 기억하진 않지만, 어제의 일까지 기억나지 않는 건 역시...』


나 역시 일주일 간의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모두 기억이 토막나 있다.


이치죠 카나메

『내 경우는 더 심해. 아침의 기억도 없어. 수업을 받은 기억은 있는데, 방과 후의 기억은....없어.

학교 화장실부터,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한 것까지, 그 사이의 기억이 사라졌다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운 것까지밖에 기억이 없어』



호시 이치카

『.....저기, 카나메』


이치죠 카나메

『왜?』



호시 이치카

『우리들, 늘 항상 함께였지?』


이치죠 카나메

『그랬지. 그런데 갑자기 왜-』



호시 이치카

『그럼 어째서, 학교에서의 기억만 있는걸까? 작년까지는, 같은 반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반이 바뀌어서......』


점점 이치카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호시 이치카

『학교에서, 카나메와 이야기한 기억이 없어. 그리고......

같은 반일땐, 둘이서 집까지 하교했는데, 올해 들어선, 함께 돌아간 기억이 없어.』



호시 이치카

『아니..... 오히려 다른 누군가던가..... 혼자라던가, 하교한 기억도 없어』


이치카의 말대로였다.

바로 옆집이여서..... 태어날 때부터 계속 함께였는데,

둘간의 기억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에서 지내왔는데도, 우리의 기억이 거의 없다.   



호시 이치카

『그게, 사라진 기억이란 걸까?』


이치죠 카나메

『어쩌면.....』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호시 이치카

『미안, 나 조금 혼란스러워.....』


이치죠 카나메

『......괜찮아?』



호시 이치카

『응...... 그치만 어제부터 잠을 못 자서...』


이치죠 카나메

『설마, 안 자고 계속 여기에 있던 거야?』



호시 이치카

『응. 그치만, 방에 돌아갔어도 걱정돼서 못 잤을거야. 신경쓰지 마』


이치죠 카나메

『그렇구나.... 미안. 그러면, 조금 쉬는 편이 좋지 않을까?』



호시 이치카

『응 그럴게. 고마워, 카나메........ 이따 보자』



이치카는, 피곤한 얼굴로 미소를 억지로 지으며, 방에서 나갔다.


이치죠 카나메

『.......』


혼자 남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하는 것 뿐이지만, 정보가 부족했다.

내게 닥친 상황도 그렇지만, 의문이 너무 많아서, 생각만 낭비할 정도였다.

앨리스의 정체는?

다른 열 명은 어떻게 할 셈이지?

선거는, 어떻게 이뤄지지?

선거에서 뽑히지 않은 열명은, 죽는건가?

뽑힌 두명은..... 선거에서 이김으로써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으니까, 살아남는 건가?


이치죠 카나메

『....틀렸어. 생각이 정리가 안 돼』


모르는 것 투성이고, 주어진 정보도, 거의 없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서..... 아무라도 얘길 하고 싶었다.



문 근처에 꽂혀있는 카드키를 가지고 복도로 나갔다.

사용법은, 평범한 호텔과 비슷해 보여서 안심했다.

카드에는 문패에 적힌 방 번호와 같은 숫자가 그려져 있다.

202호실.

그러고보니, 이치카의 방번호를 못들었다.

나중에 잊지 않도록 이치카에게 물어봐야겠다.


이치죠 카나메

『.......』


생각보다 건물은 넓지 않았다.

복도에 있는 안내판에 그려져 있는 방 개수는 12개로, 우리들 전원의 인원수와 일치하다.

누군가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방문을 노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것도 싫었지만, 

무작정 걸었다.

달리 내가 알고 있는 장소는, 그곳 밖에 없다.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에 의존해서,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

.



넓은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각자에게 주어진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희미한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이치죠 카나메

『......누구?』


돌아온 대답은 없었지만, 방 구석에, 웅크린듯 움직이지 않는, 작은 그림자를 찾았다.



이름도 모르는...

기억이 없다고 앨리스가 말했던 그 소녀였다.


이치죠 카나메

『너는......』


라고 묻기는 했지만, 말을 어떻게 이어야 좋을지 모르겠다.

모든 기억을 잃었다면,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언어도 기억의 범위일까?

생각하는 법도?


이치죠 카나메

『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거야?』


확인할 것도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그 말을 꺼냈다. 



???

『......』


목소리에 반응해서, 그 소녀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에게는 『네』 혹은 『아니오』라는 대답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예상한 대로, 역시 대답은 없었다.

그 소녀를 어떻게 할지, 나 자신도 모른채로,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치죠 카나메

『......』 



???
『......』


이대로 여기에 방치하면, 아마 선거때 첫 희생자는 이 소녀가 된다.


이치죠 카나메

말할 줄 알아? 전혀 몰라?』


무섭지 않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치죠 카나메

『난 이치죠 카나메. 네 이름은?』



눈 앞까지 와서도, 그 소녀는 이쪽을 올려다볼 뿐,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웅크려서 눈높이를 맞추곤, 어린 아이에게 대하듯, 다시한번 되물었다.


이치죠 카나메

『자기 이름은, 알고있어?』



???

『......』


역시 침묵인가.

앨리스의 말대로, 이 소녀는 아무 기억도 없다.

말하는 법도 모른다면, 이야기 할 수 없다.

언젠가 말하게 되는 것도, 자신의 의지를 갖게 되는 것도.... 갓난아기가 성장해서 되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걸까?


이치죠 카나메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어?』


버리고 떠날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이치죠 카나메

『방에 돌아가서, 쉬지 않을래?』



앨리스는 말했다.


앨리스

『모두가 뽑는거야. 누가 살아남아야 하는 지를. 그리고 누가 살아남으면 안 되는 지를』



주어진 시간을 생각하면, 내일 앨리스가 지시하려는 건, 아마 후자의 방식이겠지.

그리고, 가장먼저 뽑히게 되는 건, 이 소녀일 것이다.


이치죠 카나메

『일어서볼래? 방까지 데려다 줄게』


이 소녀와 다시 만난 사이도 아니다.

어떤 인연도 없는, 열명 중에 한명일 뿐이다.


이치죠 카나메

『자 어서, 같이 가줄게』


다만..... 어째서인지 내버려둘 수 없었다.


이치죠 카나메

『여기 내 손을 잡아』


손을 잡고, 여자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생각보다 키가 작았다.

내 어깨보다 밑이었다.

어린 건 틀림없지만, 몇 살 정도일까.


이치죠 카나메

『네 방 번호가 그러니까.... 저, 카드 좀 보여줄래?』


손에 들고 있지 않아서 찾아보려고 하니, 그녀의 발 밑에 카드가 떨어졌다.

작은 아이에게 대하듯, 조용히 손을 잡았다.

방 번호를 확인하고, 아까 나왔던 층으로 돌아가려고, 발을 떼었다.

그 소녀는, 달리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오는 것 같았다. 



앨리스

『잠깐만, 카나메 군』


이치죠 카나메

『에? 아...... 앨리스?』


어디서 나타났는지, 내 앞에 앨리스가 서있었다. 



앨리스

『그 아이를 어쩔 셈이니?』


이치죠 카나메

『방까지 데려다 줄까 생각해서...』



앨리스

『앗 왜? 네 취향은 이런 아이니? 그치만 억지로 하는 건 안 돼』


이치죠 카나메

『에? 아..... 그런 거 아닙니다. 그저, 이 아이가 계속 이런 곳에 있으니까...』



앨리스

『카나메 군은, 농담이 안 통하는 구나. 그래도 마침 잘 됐는 걸.

카드 키는 건냈지만, 방에 돌아갈 생각도 안하는 것 같고, 나도 어떻게 할까 망설일 참이었거든.』



앨리스

『그러니까, 네가 챙겨준다면야, 대환영이야』


이치죠 카나메

『......그런가요?』


이 아이를 어떻게 할지 망설였다는 것도, 내가 챙겨주는 것을 환영하는 것도 진실이다.

앨리스가 우리들을 괴물로부터 지켜준 것도 그렇지만.....

악의라고 부를 정도의 것은,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앨리스

『그래서, 맘에 드니?』


이치죠 카나메

『에? 무슨 말씀인지?』



앨리스

『아니, 저 여자 아이말야.』


이치죠 카나메

『....그런 거 아닙니다』


조롱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아니면..... 선거라는 것도, 괴물이라는 것도 없었다면, 이런 잡담으로도 누그러졌을지도 모른다.



앨리스

『그건 그렇고, 이전의 일은, 답례하고 싶네』


이치죠 카나메

『답례?』 



앨리스

『그, 이즈키 군을 멈춰준 것 말야. 계속 난리쳤다면, 정말 내가 어떻게 할 수 밖에 없었거든』


이치죠 카나메

『......아뇨, 그 때 말했듯이, 눈 앞에서 누군가가 죽는 게 싫었을 뿐입니다』


앨리스

『이유는 뭐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감사를 전하고 싶은 것 뿐이거든』


이치죠 카나메

『그렇....군요.』



앨리스

『그리고, 네가 내 말을 믿어준 것도 포함해서 말야』


이치죠 카나메

『그건.....』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 앨리스에게도, 그건 말할 수 없다.



앨리스

『우리,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지 않니?』


이치죠 카나메

『어째서 갑자기, 그런 말을.... 그리고, 무슨 의미죠 그건?』



앨리스

『음.... 뭐랄까. 내가 한 말은, 간단히 믿기 힘들잖니?

그러니까, 카나메 군이 믿어준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고, 앞으로의 일도 편해지게 되거든』


앨리스의 말을..... 믿는다.

다만 그것은 신뢰와 거리가 멀다.

그저 거짓말을 알 뿐, 그 말이 진실인지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앨리스

『뭐, 선거라는 것도 있으니, 갑자기 친해지기 어려겠지만 말야』


이치죠 카나메

『......』



앨리스

『하지만, 나도 믿어. 네가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라는 걸』


이치죠 카나메

『......고맙습니다』


기본적으로, 라는 부분이 걸렸지만, 일부러 대꾸할 필요도 없다.



앨리스

『그럼, 슬슬 데려다 주겠니? 한가해 보이는데』



???

『.....으우?』


이치죠 카나메

『그렇군요』


아직 앨리스와 하고 싶은 얘기는 남아있지만, 우선은 이 아이를, 방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먼저다.



앨리스

『그럼, 또 보자구』


손을 흔들고 있는 앨리스를 두고, 소녀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소녀와 손을 잡고 걸면서, 아까 앨리스와의 일을 생각한다.

파트너라는 건 논외지만, 앨리스와 친해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 편이 이후에 유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라는 계산적인 생각을 했지만, 사람이 죽는 걸 보는 건, 싫다.


이치죠 카나메

『....』


???

『....』


조금 전, 앨리스와의 대화에선, 앨리스가 악인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이 아이의 일을 것정하고 있던 것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람을 열명 줄인다.....라는 앨리스가 제시한 방침도, 정말로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납득은 가지 않는다.

조금 더 앨리스에 대해 알려면,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카드키에 적힌 번호의 방까지 도착했다.

소녀의 카드를 사용해서, 잠금을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방과 완전히 같은 구조였다.

다른 점이라면, 벽지와 융단의 무늬정도려나.


이치죠 카나메

『우선은, 앉을까』


둘이서 쇼파에 앉으려고 했지만, 그 위에는, 작은 인형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이치죠 카나메

『......이건...』


그것을.... 나는 본적이 있다.

손에 쥐어, 그 감촉을 확인하자, 확신이 강해졌다.

어디서...

어디서 이걸 봤지?


심장이 튀어날올 정도로 요동친다.

그와 동시에 숨이 막혀온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뭔가를 외쳤다.

호흡할 수가 없다.


???

『......』


옆에 앉은 소녀의 펼친 손이, 인형에 닿았다.



-죽여버리겠어.


내 앞의 소녀를?

-죽여버리겠어


아니.... 그게 아니다.

그래.... 그 반대다.

나는, 돕고 싶다.


-죽여버리겠어


누구를?

-이치카를 제외한 전부를


.

.

.



???

『오빠』



치직



어둡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등에서는, 부드러운 쇼파같은 감촉이 전해진다.

누워서 자고 있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빛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선, 그런 감각도 애매하게 느껴졌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머리가 벽에 부딫혔다.


이치죠 카나메

『......젠장, 뭐지?』


위로 손을 뻗어보자, 곧바로 딱딱한 벽에 막혔다.

옆에도 벽이 있고, 무릎을 피면, 그 무릎도 곧바로 벽에 닿았다.

연상되는 것은, 관이었다.



이치죠 카나메

『뭐야..... 이건.....』


혼란스러운 머리를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서, 몇번이고 심호흡을 반복하자,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고 압박하고 있는 감각이 흐려졌다.

손을 뻗자, 아까까지 바로 앞에 있던 벽이 사라져 있었다.

그대로 수색을 계속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치죠 카나메

.....저기요! 누구 있나요!』 

넓은 공간인지, 목소리가 벽에 울리며 들렸다.

여기는 어디지?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여기서 깨어나기 직전엔..... 뭘 하고 있었지?


밤, 잠들기 전... 방에서 얘기하던 미사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이치죠 카나메

『맞다.... 미사...

미사! 여기에 있어!?』


여기가 내 방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외칠 수 밖에 없었다. 



???

『......카나메?』


미사는 아니지만, 반응이 있었다.

내 이름을 불렀다.

들어본 적 있는, 친숙한 사람의 목소리다.



이치죠 카나메

『......이치카?』



호시 이치카

『역시, 카나메지? 여긴 어디야? 여긴 대체, 뭐야?』


소꿉친구, 호시 이치카였다.


이치죠 카나메

『......나도 모르겠어.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 때, 아까 들었던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열리는 소리.

내가 갇혀 있었던 무언가가, 열리는 소리.

이 방에는, 또 다른 한사람.... 누군가가 있다.


이치죠 카나메

『......누구, 있는거야? 나와 이치카 외에?』



???
『에? 이치카 언니? 그리고, 이 목소리는.... 오빠?』


이치죠 카나메

『미사!!?』



이치죠 미사

『으......응. 저기 오빠, 여긴 어디야?』


이치죠 카나메

『아아....미안, 나도 모르겠어. 어쨌든, 상황을 정리해보자. 우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볼테니까, 아무 말이라도 해줘』


호시 이치카

『......우리가 있는 곳은, 침대려나?』


이치죠 카나메

『그럼, 우선은 나가보자』


신중히 손으로 짚어가면서, 침대같은 무언가의 끝에 앉았다.

이제와 눈치챘지만, 옷도, 구두도 신은 채로 있었다.

그 발을.... 천천히 내렸다.

......다행이다.

지면이 있다.

손으로 만지자, 딱딱한 콘크리트의 감촉이었다.


이치죠 카나메

『미사, 아무거나 말좀 해볼래?』


이치죠 미사

『그.....그게.... 아무말이나 하면 돼?』


이치죠 카나메

『아, 응. 그거면 되거든.』


이치죠 미사

『그게,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서....』


목소리가 나오는 쪽으로 향했다.

손을 땅에 붙이면서, 네개의 손발같은 모습처럼 신중히 나아갔다.

암흑 속..... 옷 스치는 소리와, 누군가의 한숨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치죠 미사

언니도 있는거지?』


호시 이치카

『......응, 여기 있어. 나도,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치죠 카나메

『좋아....』


손이, 차가운 금속의 벽에 닿았다.

벽에서 손을 올려보자, 따뜻한 무언가가 닿았다.


이치죠 미사

『흐앗!』


이치죠 카나메

『괜찮아, 내 손이니까』



이치죠 미사

『그, 그래?』


그 손에,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치죠 미사

『아, 정말이다. 오빠의 손이야.....』


이치죠 카나메

『그대로, 벽에 손을 짚어.... 그래. 이쪽에 와도 괜찮아. 바닥이 제대로 있으니까』



이치죠 미사

『으......응. 아, 잠깐만』


이치죠 카나메

『무슨 일인데?』


이치죠 미사

『인형.....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할려고...』


이치죠 카나메

『인형이라니, 그거 말야?』


이치죠 미사

『응, 이제 괜찮아』


바로 옆으로, 미사가 내려온 것이 느껴졌다.


이치죠 카나메

『미사, 손 떼지마』


이치죠 미사

『.....알겠어』


이치죠 카나메

『이치카, 지금 그쪽으로 갈게』



호시 이치카

『......응, 부탁할게』


미사 때와 똑같이, 신중히 이치카의 위치로 향했다.

옆에는 미사가 있어서, 아까보다 상당히 마음이 놓였다.


이치죠 카나메

『이치카, 이쪽으로 손을』


호시 이치카

『아, 있다!』


이치카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이치죠 카나메

『거기서 나와서, 이쪽으로 내려와』


호시 이치카

『응』


미사와 잡은 손의 반대편 손은 이치카와 잡았다.


그렇게, 세명이 모였다.

상황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저, 이렇게 전원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되었다.


이치죠 카나메

『이제부터.... 어떻게든 해야되는데....』



??? (앨리스 목소리)

『아, 너네들. 이제야 일어났구나』


이치죠 카나메

『......누구야』


???

『자자,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잖니. 아무튼, 난 너네를 지킬 책임이 있으니까, 어른스럽게 말을 잘 들으렴』


이치죠 카나메

『......여긴 어디야?』



???
『일단은, 빛쪽으로 오렴. 안전한 곳은 그곳뿐이니까』


이치죠 카나메

『빛?』 



그 때, 바닥에 몇 개의, 연색 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영화관 통로에 있는 것처럼, 작고 희미한 연색의 빛이었다.


???

『우선 밖으로 나오렴. 지금은 안전하겠지만, 계속 그곳에 있을 수만은 없잖니』


목소리는 들리지만,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희미한 목소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치죠 카나메

『.....네 말을, 믿어야 할 근거는? 애초에, 넌 누구야?』



???

『으음, 그렇게 나오는 구나. 이건 내 호의지, 반드시 너네를 지킬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너넨 좋을대로 하렴. 그치만, 말을 듣는다면 도울 수 있고, 그 편이 너네들에게도 좋을 거야』


호시 이치카

『......카나메, 어쩌지?』


이치죠 카나메

『알겠어, 따를게』


???
『오케이~, 쭉 가서 밖으로 나오렴』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이치죠 카나메

『내가 선두로 갈게. 나, 미사, 이치카 순으로』



이치죠 카나메

『손은 비어놓는 편이 나으니까..... 미사는 내 옷을 잡고, 이치카는 미사의 옷을 잡아』


호시 이치카

『잡았어』


이치죠 미사

『나두』


이걸로, 준비는 끝.

양손을 눈 앞에 내밀고, 빛을 따라 신중히 나아갔다.



???
『아, 바로 앞에 계단이 있으니까 주의하렴』


이치죠 카나메

『......보고 있는거야?』


???
『있다는 것만 알 뿐이야』


이치죠 카나메

『.......』


조심조심 발을 앞으로 딛자, 발끝이 무언가에 닿았다.

작은 빛이, 계단의 그림자를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치죠 카나메

『여기에 계단이 있으니까, 조심해』


뒤의 두 사람에게 주의를 주고, 발 밑을 보면서 나아갔다.

그렇게, 한 계단, 또 한계단. 천천히 올라갔다.

이윽고, 앞으로 뻗고 있던 손이, 차가운 금속의 벽에 닿았다.


???

『도착한 모양이네』



눈 앞의 문이 열리자...

갑자기 빛이 눈으로 쏟아들어왔다.

별 빛이었다.

그런 희미한 별 빛을 눈부시다고 느낀 것은 일순간이었고, 이내 바로 적응하였다.


이치죠 카나메

『......』


이치죠 미사

『아얏!』


호시 이치카

『미사 짱! 괜찮아?』


이치죠 카나메

『무슨 일이야! 미사!』


이치죠 미사

『계단에서..... 발을 접질러서....』


???

『거기서도 불이 보이지? 관람차의 불빛.』 



그 목소리는, 전봇대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
『얼른 그쪽으로 향하렴. 거기엔 괴물이 득실거리니까』


이치죠 카나메

......괴물?』


???

『괜찮아, 그 길은 안전하거든』


이치죠 카나메

『괴물이라니 그게 뭔데!』


???

『설명은 나중에 해줄게. 우선 지금은 서두르렴. 이쪽도 이것 저것 하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괴물이 있어도, 무조건 무시하렴. 그 이후엔 그냥 오기만 하면 돼』


이치죠 카나메

『.....제길』



호시 이치카

『......괴물이라구?』


이치죠 카나메

『미안..... 나도 모르겠어』


뭔가 있다.... 괴물이라고 불를 만한 무언가가.

.....여기서 가만히 있어도, 사태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호시 이치카

『어쩔까, 카나메?』


이치죠 카나메

『우선, 저 말대로 하는 편이 좋을....지도』



그 목소리가 말했던 관람차는, 여기서도 잘 보인다.

이 길을 곧장 가면, 금방 도착할 것 같다.


이치죠 카나메

『미사, 걸을 수 있겠어?』



이치죠 미사

『으......응....... 아얏!』


이치죠 카나메

『왜, 왜그래? 괜찮아?』



이치죠 미사

『걸을 수 없겠어... 체중을 실으면, 아파서....』


호시 이치카

『......염증이 생길걸까.... 뭔가로, 받치면 좋을텐데』


테이프나 붕대도 안 가지고 있고, 찾을 시간도.... 없을 지도 모른다.


이치죠 카나메

『좋아, 업어줄게.』



이치죠 미사

『그치만......』


이치죠 카나메

『괜찮으니까, 어서』


이치죠 미사

『......응』


등에 미사를 엎고, 일어섰다.

미사는 작아서, 업어도 평소 걷는 것과 별 차이는 없다.

다만, 저 관람차가 보이는 곳까지는, 정확히 어느 정도의 거리일까?

관람차의 크기로 어느 정도 추측은 되지만, 사람 한 명을 업고 걷기에는, 짧은 거리는 아니다.



이치죠 카나메

『......가자』


호시 이치카

『응』



눈 앞의 길에는, 가로등이 켜져있다.

먼 곳을 바라보니, 이 길만 켜져있다.

똑바로 나아갈 그 길을, 미사를 업은 채로 걸었다.



호시 이치카

『......여긴 어디일까? 본 적 없는 거리긴 한데』


이치죠 카나메

『우리 집 근처에 유원지가 있었던가?』


호시 이치카

『없던 것...... 같아』



호시 이치카

『언디가에, 간판이라도 있지 않을까?』


걸으며, 지도나 지명이 적힌 무언가가 없는지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치죠 미사

『.....없네』 



호시 이치카

『게다가...... 우리 이외에 사람도 없는 것 같아』


지금이, 밤 몇시인지도 모른다.

손목 시계는, 자기 전에 풀어놔서 없는 걸까?

아니...... 애초에, 자고 있었다면, 어째서 난 교복을 입고 있는 거지?



호시 이치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이치죠 미사

『오빠....나, 무서워』


이치죠 카나메

『......괜찮아, 미사』


어떤 확신도 없이, 미사에게 대답했다.

어디를 봐도, 아무도 없는 거리.

줄지어있는 집 창문 마다, 불이 전부 꺼져있다.

몇시가 되었던 간에, 반드시 어느 누구는 깨어나 있고, 업무나 생활을 하고 있을텐데...



뭔가, 이상하다.

마치...... 가상 세계에서 흔한, 지구 멸망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

아~ 아~ 여기가 맞나? 맞아. 찾는 물건같은 건 없으니까. 얼른 와』


또...... 그 목소리다.


이치죠 카나메

.....안 따라가면, 어떻게 돼?』


???

또 그런 소리니? 그러면 죽는다구』


호시 이치카

『카나메.... 어떡하지?』


???
『이제, 고민할 틈도 없는데.

뭐, 사람은 영원히 살 순 없지. 거기서 죽으면, 그게 너희들의 수명이란 걸까?』


이치죠 카나메

『......헛소리』


???

『헛소리가 아니야. 뭐가 되든지, 수명은 있다구. 이 거리도 그렇고..... 지구도 마찬가지야』



이치죠 미사

『오빠!』


미사의 비명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생소한,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서 있는 것은....



이치죠 미사

『.....아...』


호시 이치카

......뭐야......저게』


이치죠 카나메

『......』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지금까지 본 적이 있는, 모든 생물과는 틀린.... 다른 무언가.

그것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치죠 미사

『오빠!』



이치죠 카나메

『도망쳐! 이치카!』


호시 이치카

『아, 알겠어!』



이치죠 카나메

『이치카! 왼쪽으로!』



빛이 없는 샛길을 향해 돌진했다.

그 귀에 거술리는 짐승 소리가, 쫒아온다.



앨리스

『아냐! 그 쪽이 아냐!』


그 목소리와 동시에,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피아노 음색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어느정도 뛰었을까?

아마 몇 분?

....숨이 차다.

다리 근육이 뭉쳐온다.

어느샌가 음악은 들리지 않았다.


호시 이치카

『카나메! 미사 짱!』


이치카의 비명이 들렸다.

등에서, 뒤로 잡아당기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호시 이치카

『......그만둬!』


통증은......없었다.

하지만, 등 뒤에 있는 미사는?



이치죠 카나메

『괜찮은거야? 미사!?』


이치죠 미사

『아파.......아파...오....빠』


다쳤다?

어디를?

한번만, 등에서 내려 놓고, 확인해볼까?

지금 여기서?

안돼.... 괴물은 바로 눈 앞에 있다.

지금은..... 웅크리듯, 움직이고 있지 않지만....

아니. 그런 생각을 할 틈은 없다!


이치죠 카나메

『이치카, 도망쳐!』


호시 이치카

『하지만...... 어디로 도망쳐야......』


이치죠 카나메

『어...... 어디든 좋으니까!』


호시 이치카

『으, 응』



???

『이쪽이라니까! 정말이지.... 내 말을 안 들으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라구.

빨리, 원래 길로 돌아와. 지금은 거기만 안전하니까』


이제,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저 그 목소리에 따르듯, 오로지 달렸다.


이치죠 미사

『오......빠......』


그 목소리를 듣자, 힘이 나는 듯 했다.

몸이 가벼워 졌다. 


이치죠 카나메

『괜찮아, 반드시 살 수 있어!』


호시 이치카

『......카나메』


이치죠 카나메

『괜찮아.... 이치카도. 괜찮을거야』


그대로, 왔던 길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도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

『걱정마렴, 그냥 지나가도 돼』


이치죠 카나메

괴물이 눈 앞에 있다고! 가능할 리가 없잖아!』


???

지금은 그 길만 안전하다구. 몇 번이나 말하게 할 셈이야? 그 이상, 쓸데없는 짓을 할 생각이라면, 나도 이젠 안 해』


이치죠 카나메

『하지만......』



호시 이치카

『카나메, 나 먼저 가볼테니까....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따라와줘』


이치죠 카나메

『이치카, 안 돼!』


이치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괴물이 이쪽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초에 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치카는 결연한 발검으로, 그 괴물에게 다가갔다.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그 괴물을 자극하게 될까봐, 그 이상 소리도 내지 못했다



천천히, 이치키가 그 괴물 옆을 통과했다.


호시 이치카

『괜찮아. 안전하니까, 얼른 와』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미사의 다친 정도를 모르니까 서두를 수밖에 없다.

정말 구할 길이 있다면, 지금은 그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이치죠 카나메

『고마워, 이치카..... 가자, 미사. 꽉 잡아』



유원지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입장권인지 뭔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멀리서도 보였던 관람차의 불빛을 믿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치죠 카나메

『미사,... 이제 다왔어』


호시 이치카

『......』


???

『네, 그럼 그쪽으로 쭉 와줘』


목소리가 유도하는 대로, 따라갔다.

이제 서두르란 말은 없다.

아마 여기는 안전한 곳인 것 같아서, 신경쓰지 않았다.


???
『거기에 모두 모여있으니까, 합류한 뒤부터 전부 얘기해줄게』


호시 이치카

『......모두가?』


이치카가 뭐라고 말했지만, 피로와....... 안도감에, 이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곳에는, 여러명의 남녀가 있었다.



??? (->)

『휴우, 너희들도 여기로 불려왔구나?』


호시 이치카

『......누구? 가 아니라.... 여기는 대체, 어디?』


??? (->)

『유감이지만, 나도 전혀 모른다고. 어떤 설명도 없었고, 어두운 방에서 깨어나선...... 목소리를 따라왔더니 여기였거든.